조선어

<오사카성 코마이누>(大阪城狛犬)전경


근경

 

<오사카성 코마이누>(大阪城狛犬)의 올바른 유래를 쓴 설명판의 설치를 요구하는 서명에 협력해 주십시오


오사카성 <니시노마루 북문>에 있는 <코마이누>는 중국 명나라시대의 국보급문화재입니다. 그것이 어째서 오사카성에 있을까요?
일본군은 1937년 7월 7일, 노구교사건을 일으키고는 전면적인 중국침략을 개시하였습니다. 같은 해 12월 13일에는 당시 중국의 수도였던 난징에 대한 침공과 대학살을 일으켰습니다. 그 도중, 7월 29~30일에 천징을 폭격,점령하고 그때 천징시청사앞에 있었던 <코마이누>를 약탈한 것입니다.
<코마이누>는 다음해 1938년에 일본 효고현니시노미야시의 니시노미야 야구장 및 외원에서 열린 <시나사변성전박람회>(支那事変聖戦博覧会)에서  <승리의 전리품>으로서 전시되여 전쟁분위기를 고조시키는데 이용되였습니다. 그후 오사카성의 일각에 되는대로 방치되어 있었습니다.

1982년 오사카성에 대한 조사의 결과 <오사카성의 코마이누는 중국에서 약탈되여 온 것임>이 밝혀졌습니다. 1983년 1월 1일부터 우리 일본시민들은 <코마이누를 중국에 반환할것>과 <일본군국주의·침략전쟁의 반성으로서 "코마이누의 복제"를 건립하여 평화의 상징으로 삼을 것>을 요구하여 서명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. 이러한 시민들의 목소리에 응하여 중국은 1984년 11월 <코마이누 반환의 신청은 일본인민들의 우의의 뜻의 표현이다>며 <코마이누>를 새로 <우호의 상징>으로서 오사카시에 기증해주었던 것입니다.
그러나 <코마이누>의 설명판에는 이러한 역사적인 경위가 씌여져 있지 않습니다. 설명판에는 일본어로 다음과 같이 씌여져 있습니다.
《이 한쌍의 <코마이누>는 중국·명나라시대의 문화유산으로서 높이가 3메터, 무개가 2.9톤이다. 일중전쟁의 와중에 일본으로 옮겨져 당시 륙군제4사단사령부가 있었던 오사카성내에 두게 되였다. 전후에도 오래동안 <야마자또구찌데마스가따>(山里口出桝形)의 동쪽부근에 두어졌으나 소화59년(1984), 중국정부에 의하여 새로 오사카시에 기증되여 이 자리에 옮겨졌다. 이후 이 <코마이누>는 양국인민의 우호관계를 촉진하며 우의를 깊이는 상징으로 되어있다. 옆에 건립된 기념비에는 변함없는 중일우호에 대한 염원을 나타낸 <중일우호 만고장청>의 글이 새겨졌는데 이는 당시의 송지광 중화인민공화국주일본특명전권대사의 글이다.》

이 설명판으로는 어째서 중국의 <코마이누>가 일본으로 옮겨졌는지 알수 없습니다. 일본의 고미술상이 중요문화재인 <코마이누>를 사서 전쟁의 불길로부터 지켜내기 위해 일본으로 가져와 보존했다고 생각케 하는 설명으로 되여있습니다.
침략전쟁에 대한 반성의 말은 전혀 없습니다.
이와 같은 설명판으로 어떻게 <코마이누>를 <일중우호의 상징>으로 삼을수 있겠습니까?

저희 <오사카성 코마이누의 모임>은 2014년 5월 22일 오사카시회의장과 당시의 하시모토오사카시장앞으로 <코마이누의 올바른 유래와 일중불재전의 결의가 명기된 설명판설치를 요구하는 진정서 및 요망서>를 제출하였습니다. 그러나 오사카시는 이 요망을 이유도 없이 거절하였습니다. 2015년 4월에는 오사카성에 있는 <피이스오사카>(오사카부와 오사카시가 공동출자하는 재단법인"오사카국제평화센터")라고 하는 전쟁박물관에서도 난징대학살이나 종군위안부에 관한 전시를 철거했습니다.

오사카시는 일본청년들에게 이 <코마이누>의 올바른 유래를 알려야 할것입니다. 침략전쟁의 역사를 수정하거나 은페하는 것은 용서되지 않습니다. 이는 일본이 또다시 군국주의의 오류를 범할것을 용서치 않으며 미래의 일본과 아시아,세계의 평화를 위하여 필요한 것입니다.
저희들은 <코마이누의 올바른 유래와 일중불재전의 결의가 명기된 설명판설치를 요구하는 서명>을 벌이고있습니다. 평화를 염원하는 전세계 여러분들의 협력을 바랍니다. SNS로서의 확산을 바랍니다. 넷트아드레스는 다음과 같습니다.


<오사카성 코마이누의 모임>